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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이 영화는 호감관계의 비대칭성, 그러니까 호감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가팔라진 상태에서 '을'이 되는 사람의 좌절감, 불안함을 정말 잘 표현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하면서 하게 되는,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들고 우습고 지질하게 만드는 그 불안정한 상태가 콜름을 향한 파우릭의 행동으로 잘 그려진다. 파우릭은 콜름에게 변함없는 우정과 관심, 지금 이 순간 상대방을 향한 마음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입장에서 콜름의 일방적인 절연선언을 납득하지 못한다. ‘갑’의 입장은 어떨까? 단순히 상대가 '싫어서', '싫어져서' 밀쳐내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 이 사람과의 관계를 마무리해야 한다.'하는 경우도 분명 적지않다. 상대방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남아 있어도 '나'를 지키기 위해 하게 되는 그 결정..

리뷰/영화 2023.10.19

아주 우스운 꼴

조금 전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외곽의 나무와 수풀 사이에서 아주 우스운 꼴을 보았다. 형광색 자켓을 입고 있는 노인이 나무에 노상방뇨를 하고있었다. 그리 깊지도, 그리 얕지도 않은 아주 애매한 위치에서. 그것도 벌건 대낮에.  인간이 노상방뇨하는 꼴을 목격한 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내가 우습다고 느꼈던 점은 노인이 물건을 쥐고 있는 두 손 중, 한 손에 개 목줄이 들려있었다는 것이다. 견종은 말티즈로 보였다.   개에게 그런 상황이 얼마나 익숙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관심이 없었을 수도. 어쨌든 말티즈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소변 줄기의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쪽,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견주가 반려견이 볼일 볼 때 구태여 그것을 바라보고있지 않는 것처럼. 견주가 길..

단상/배설 2023.10.08

시를 써 보았다

대변을 보다가 영감을 받았다.이것은 나의 첫 창작시이다.무단 도용시 사형 제목은 '똥'지은이, 나똥은,이별이다.서른 시간의 인고를 거쳐작별을 고하는 나의 벗이여그대의 울음소리는 '퐁당'인가긴 시간 빛 없는 어둠을 거쳐작별의 순간에서야 만나는 찰나의 빛그대 차디찬 웅덩이에 웅크리고있구나찰나를 댓가로 온기를 빼았겼나이내 다시 터널 속 어둠으로 발길을 재촉할,내가 될 뻔했던 나의 허물이여, 나의 흔적이여나 웃으며 이별을 고하노라울지말아라, 우리는 별의 아이들그대 부서지고 또 부서져나를 거쳐갔다는 사실만 남겠지그렇게 다시 우주의 부속물로 돌아가겠지그 날이 되면 우리 최종방류지에서 다시 만나자흙이 되고, 새싹이 되고콩이 되고, 두부가 되어 다시 만나자안돼... 콩고기는 아직 안돼...우리 다시 만나 그대가 내가 ..